시위문화와 언어예절
  • 임순남타임즈
  • 승인 2019.11.1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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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학연구소/위생약국 노상준

촛불혁명이란 신조어가 우리나라에서 탄생하였다.

극히 평화적인 시위문화(示威文化, demonstration)가 온 세계이목을 우리에게 집중케 한 것이다.

민중을 움직이는 매체로서 연설이나 시위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옛날 백성은 그저 민초(民草)라 하여 바람 부는 대로 쏠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민권(民權)부재의 시대가 있었다. 그때는 대권이 오직 임금 한 사람이 있었기에 상소하는 상향문화는 발달했지만 하향문화는 발달할 수 없었다. 시위나 연설이 우리나라에 토착하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에 서재필이 미국에서 돌아와 민권의식을 고취하고 독립 개화 운동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한다.

당시 고종이 옮겨가 계시던 정동(貞洞)러시아 공사관 앞에서 임금은 환궁하여야 한다는 가두연설은 청중의 호곡(號哭)을 이끌어 낸 연설이었다고 하고 육조(六曹)거리에서 상하벼슬아치들을 낮도둑이라고 규탄한 용기 있는 연설은 옥사(獄事)까지 일으키고 보수파에서는 등짐 봇짐장사(보부상)을 매수 반동(反動)단체를 만들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 개화파의 연설회장에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의 시위문화의 면모는 생각지도 못할 가공할 음모책략이 내재되어 있을 때가 많고 총선이 가까이 오면서 조선시대 4색 당쟁의 역사가 재현된 느낌이다.

국민들의 시각으로는 모두 “당리당략”으로 일관된 시위문화요, 국민들을 현혹케 하는 연설뿐인 것 같다. 모두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라고 외쳐대지만 국민은 외면한다.

허망(虛妄)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삼사일언(三思一言)하자. 성경의 잠언편을 보면 인류가 지켜야할 생활 예절이 너무도 잘 기록되어 있음을 본다. 의(義)와 예(禮)를 존중해야 할 정치권의 지도자들이 패거리 싸움으로 서로의 발을 물고 끌어내리는 항아리 속의 게 꼴이요, 속 빈 강정 같은 유세(遊說)남의 험담만 늘어놓은 언행은 원망을 사는 원설(怨說)이 된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 교양을 나타내는 것이니 올바른 말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하였다. 그릇에 담긴 물건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의 사람됨을 가늠한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거두기 어려운 것이 말이다. 특히 설화(舌禍)란 말 한 번 잘못한 말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몸조심, 말조심은 예로부터 일러온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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